애니메이션: 고래의 아이들은 모래 위에서 노래한다

고래의 아이들은 모래 위에서 노래한다
クジラの子らは砂上に歌う
Children of the Whales

이 글은 브런치에 기고한 글입니다.

진흙으로 만들어진 섬이 있습니다. 이 섬은 모래로 만들어진 바다를 정처없이 표류합니다. 이 섬에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주민의 대부분은 어린 아이들이며 진흙고래 밖은 어떤 세상인지 모릅니다. 게다가 거주민의 대부분은 젊은 나이에 단명합니다. 이게 어찌된 영문일까요?

애니메이션 <고래의 아이들은 모래 위에서 노래한다>는 사방이 모래로 뒤덮인 세계를 표류하는 진흙고래가 외부 세계와 접촉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린 만화 원작의 애니메이션입니다. 제목 중 ‘고래의 아이들’은 진흙고래에 살고 있는 소년과 소녀들을 가리키며, ‘모래’는 대사해, 즉 사방이 모래로 뒤덮인 바다를 뜻합니다.

고래로운 평화마을에 불어닥친 피바람

주 무대인 진흙고래(누스 파레나)

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인 차크로는 진흙고래 사람들의 삶을 후대에 전하는 인(印)1)입니다. 비록 인(印)임에도 사이미아2)를 능숙히 다루지 못하지만 장로회3)에 도움이 되는 기록을 남겨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벽에도 무언가를 계속 써나갈 정도로 기록하는 습관이 몸에 베어 있을 정도입니다.

평범한 일상을 기록하던 그의 생활은 외부 세계에서 진흙고래로 온 리코스라는 소녀로 인해 완전히 뒤바뀝니다. 리코스를 추격한 제국은 아파토이아4)로 구성된 군대를 파레나5)에 파병하여 거주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합니다. 바깥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 알지 못한 채 살아왔던 거주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죽어나갑니다. 진흙고래는 왜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있으며, 제국은 왜 진흙고래를 말살하려 하는 걸까요?


1) 인(印):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지만 단명하는 인간
2) 사이미아: 초능력
3) 장로회: 진흙고래를 다스리는 집단
4) 아파토이아: 감정을 제거당한 병사
5) 파레나: 제국이 진흙고래를 부르는 명칭

파스텔 풍 작화에 숨겨진 암울한 세계관

평화로워 보이는 모습의 실체는…?

작화만 놓고 보면 이 애니메이션은 상당히 평화로워 보입니다. 겉만 보면 평온함을 느끼게 해줄 작화입니다. 게다가 작화붕괴도 거의 없습니다. 파스텔로 화사하게 색칠한 듯한 색감이 마치 해맑은 일상물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을 그려낸 게 아닐까 싶지만…

이런 작화의 이면엔 어두운 세계관이 깔려 있습니다. 제국은 진흙고래 거주민들의 감정을 농락하며 그들을 말살하려 합니다. 진흙고래의 거주민들은 인(印)이 단명하는 원인을 찾아 해결하려 하지만 단서를 찾지 못 합니다. 진흙고래를 둘러 싼 모래바다는 삭막할뿐 아니라 텁텁합니다. 이처럼 화려한 작화와 대비되는 세계관 때문에 상당한 괴리감이 느껴집니다.

감정 따윈 개나 줘버리는 것…?

이 캐릭터는 남성인지 여성인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아파토이아(감정을 제거당한 병사): 감정을 간직한 인간들은 항상 증오와 분노로 가득 차 있지. 정말 추해.

차크로(주인공): 잊어버린다는 건 도저히 할 수 없어. 고통이나 괴로움 이 모든 것은 우리들이 살아왔다는 기록이니까!

제국은 감정을 갈등의 원인으로 인식합니다. 감정을 드러내면 갈등이 발생하기 때문에 누스(진흙고래와 같은 함선을 움직이는 거대 생명체)에게 감정을 바칩니다. 누스에게 감정을 바치지 못하는 인간은 차별받습니다. 그리고 진흙고래의 거주민들이 감정에 사로잡혀 싸운다는 거짓말을 제국의 주민들에게 프로파간다로 활용합니다.

반면 진흙고래는 기쁨과 슬픔, 인내와 분노 등 부정적인 감정도 공유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조차도 모두가 살아온 과정이자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거주민 대부분이 단명하는 진흙고래에서 고인의 족적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슬픔을 극복하는 것과 동시에 그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의미있는 일입니다.

고통, 갈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버리고 기쁘고 즐거운 감정만 조작하여 남길 것인가, 아니면 인간이 본능적으로 다양하게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둘 것인가… 제국과 진흙고래의 두 가치관 중 어느게 옳다 할 수 있을까요?

총평

작화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애니메이션입니다. 다만 세계관은 작화와 대비된다는 점을 알고 보시는 게 좋습니다.

주요 설명 (스포일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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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스는 사람의 감정을 먹고 사는 생명체입니다. 모래 바다를 떠다니는, 배의 살아있는 엔진과 같은 존재입니다. 누스는 사람의 감정을 먹고 그 대가로 사이미아라는 능력을 줍니다. 누스가 있는 방에선 사이미아를 쓸 수 없지만 아래에서 설명할 데모나스만큼은 예외입니다.

다른 누스들과 달리 누스 파레나는 인간의 감정이 아닌 인간의 생명을 먹습니다. 이 때문에 진흙고래의 인(印)들은 단명합니다. 진흙고래의 장로회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비밀로 감추고 있었습니다다. 그 이유는 무인들이 두려움 속에 살다가 죽기보다 짧은 생이라도 삶을 즐기며 살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누스 파레나의 조상은 본래 제국의 국민이었습니다. 이들은 누스의 통제를 거부하고 감정을 갖길 선택했습니다. 이에 제국은 본래 목적대로 행동하지 않는 누스 파레나에 이들을 싣고 모래 바다에 가두는 사형(沙刑)을 내립니다. 93년이 지난 후 적국에 모래바다를 건널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자 제국의 아파토이아 군 최고사령관 오르카는 파레나를 뺏기지 않기 위해 누스 파레나를 파괴하려 합니다.

 

제국은 인간이 감정을 가지는 것을 거부하는 군주제 국가입니다. 감정을 모든 갈등의 원인으로 여기기 때문이지요. 제국을 가리키는 명칭은 특별히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국민들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것조차 금지합니다.

이 때문에 등장인물 리코스의 본명은 없습니다. 차크로가 임의로 정한 이름일 뿐입니다. 본래 리코스는 제국의 휘하에 있는 누스의 명칭입니다. 누스 리코스는 파레나를 섬멸하려 이동하던 도중 타국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리코스를 제외한 선원 모두가 사망하게 됩니다.

 

데모나스는 제국 측의 언급에 따르면 누스의 힘이 만들어 낸 엄청난 위력을 가진 저주받은 전사입니다. 보통의 인(印)이라면 사이미아를 사용할 수 없는 누스의 방에서도 사이미아를 쓸 수 있습니다. 심지어 누스를 파괴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닙니다. 누스 파레나의 데모나스는 등장인물 오우니입니다.

사르크스는 제국의 황제가 측근들에게 하사하는 누스의 고기입니다. 사르크스를 먹으면 누스에게 흡수되는 감정이 줄어들어 감정이 돌아오게 됩니다.

코카로는 누스 선(船)들의 키입니다. 누스 스키로스에 있던 오리비니스는 누스 파레나의 가능성을 보며 차크로에게 코카로를 넘겨줍니다. 이후 수십년 간 모래바다를 정처없이 떠돌건 누스 파레나는 원하는 곳으로 항해할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