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가키야 미우 『 70세 사망법안, 가결』

이 글은 브런치에 기고한 글입니다.

현대 민주주의 체제는 구성원의 의견을 만장일치로 이뤄내지 못할 때 다수 의견에 따라 의사 결정을 진행합니다. 물론 이 때 소수의 의견도 존중해야 하지요. 그런데 둘로 나뉜 의견이 팽팽히 대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한 쪽 의견의 논리가 담긴 법안이, 그것도 기존의 상식과는 통용하기 힘든 희대의 법안이 통과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가키야 미우 작가의 일본 소설 <70세 사망법안, 가결>은 이런 상황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 소설은 만 70세가 되면 한 달 내로 죽어야 한다는 법안이 통과되어 법의 시행을 2년 앞둔 때에 벌어지는 한 가정의 갈등과 화해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 총리의 정책 추진력과 일본의 사회 제도가 우리나라의 것과 비교했을 때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기존의 상식으론 받아들이기 힘든 법안이 가결된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가족간의 갈등은 충분히 공감하며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비현실적인 법안이 현실 속에서 가결되었다.

“애당초 모든 국민이 일흔 살까지만 살아야 한다는 건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하는 헌법에도 위반됩니다. 당신들, 입만 벌렸다 하면 침몰하고 있는 이 나라라는 배를 구조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건가요?” – 「빨리 죽었으면 합니다」 에피소드 중, 70세 사망법안 반대 측 의견

“70세 사망법안이 시행되면 늙은 부모를 수발하다 지친 온 가족이 다 같이 자살을 한다든지, 아들과 딸이 늙은 부모 때문에 취업도 못 한다든지, 그런 비참한 상황이 일거에 해결된다, 그 말이에요. 제 생각에는 일흔 살이 될 때까지 마음껏 인생을 즐기고 깨끗하게 죽는 게 이상적이지 않을까 하는데요. 인생 70년이면 충분하지 않나요?” – 「빨리 죽었으면 합니다」 에피소드 중, 70세 사망법안 찬성 측 의견

경비 절감에 박차를 가했음에도 결국 국가 재정이 파탄난 일본. 급기야 70세 사망법안이라는 비상식적인 법을 가결시키고야 맙니다. 이 법이 시행되는 2년 후에 만 70세가 되는 모든 국민은 30일 이내에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TV에선 사망법안을 찬성하는 젊은층과 반대하는 노년층의 언쟁을 심심찮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의 세계관을 보고 문득 떠오른 궁금점은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법안이 과연 현실에서도 통과될 수 있을까?’ 라는 점입니다. 매우 힘들겠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제도의 의사결정은 옳든 그르든 다수결의 원칙에 입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옳고 그름을 어떻게 판별할 것인지 갑론을박이 될 수 있지요. 

국회의원 대다수가 여론을 무시한 채 현실의 법을 개정하고 70대 사망법안과 같은 희대의 법안을 가결시킨다고 가정해봅시다.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 시스템 상 의결정족수를 채운다면 가능은 한 일이니 이 소설 속의 상황이 현실에서 아예 실현되지 않으리란 법은 없지 않을까… 라고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단순하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 배려

마사키: 그럼 내가 여기 청소할 테니까 아버지가 산쇼야(할머니에게 사다줄 김말이초밥을 파는 가게)에 갔다 와요.
아버지: 왜 내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마사키: 그럼 내가 산쇼야에 갔다 올 테니까 아버지가 여기 청소해요.
아버지: 그러게 왜 내가 그런 일을 하냐는 말이다. 이제 막 귀국해서 피곤해 죽겠는데.
마사키: 아버지, 대체 뭐하러 돌아온 거예요? – 「태평한 남자들」 에피소드 중

모모카: 동생이 할머니 수발을 내게 떠넘기려고 해요. 정말 기가 막혀요.
료이치: 그러지 말고 모모카 씨도 가끔은 집에서 동생을 도와주는 게 어때?
모모카: 내가 왜요? 동생은 일도 안 하는데. 늘 집에 있다고요. – 「살아 있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에피소드 중

도요코는 시어머니를 수발하느라 사망법안이 시행될 때까지 본인의 자유를 잃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습니다. 마사키는 명문대를 졸업했지만 재취업을 하지 못해 하루종일 집에만 있으며, 모모카는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노인요양원은 중노동을 하지만 급여가 적고 불안한 직장으로 묘사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70세 사망법안이 시행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히 도요코는 사망법안이 시행되어 시어머니에게 구속된 자유를 되찾으려 합니다. 마사키 입장에선 전보다 취업하기 쉬워지며, 모모카 입장에선 정규직 일자리를 구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사망법안은 결코 해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보다 더 좋은 해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해답은 바로 서로를 배려하는 것입니다. 시어머니는 도요코의 심정을 헤아리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들은 도요코의 노고를 외면했기 때문에,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비정규직과 야근 그리고 노동 강도에 맞지 않는 급여를 강요했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서로를 배려하면 갈등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배려한다는 것은 단순하면서도 실천하기 어렵거나 귀찮기 때문에 우리는 배려를 외면하곤 합니다. 이 소설은 70세가 되면 죽어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통해 서로를 배려해며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