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알못 《날씨의 아이》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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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브런치에 기고한 글입니다.

주의! 이 글엔 애니메이션 《날씨의 아이》 및 《너의 이름은.》,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초속 5센티미터》를 본 이후 견디기 힘들게 몰려왔던 답답함 때문에 달달하게 치유받고자 하는 보상심리(?)로 매번 챙겨보는 애니메이션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애니메이션의 제목을 보고 아마 누구의 애니메이션인지 대부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건 바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입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엔 아직 개봉을 안 했지만 시사회를 통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새로운 극장판 애니메이션 《날씨의 아이》를 봤습니다. 생애 처음 신청해본 극장 시사회였던 데다가 정말 좋아하는 감독의 애니메이션을 개봉 전에 먼저 볼 수 있어서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시사회장은 티켓 배부 1시간 전부터 줄이 이어져 있었는데요. 크고 아름다운 영등포 CGV 스타리움 관의 스크린을 통해 한눈에 꽉 차게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스타리움 관 입구에 걸린 날씨의 아이 포스터


시사회에 중복 당첨되어 한 장은 제가 갖고, 나머지는 나눔 했습니다.


크고 아름다운 영등포 CGV 스타리움 관의 스크린. I열 중간쯤에서 봤더니 화면을 꽉 차게 볼 수 있었습니다.

《날씨의 아이》는 도쿄에 상경한 소년 호다카가 날씨를 맑게 하는 능력을 지닌 소녀 히나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판타지와 로맨스를 결합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입니다. 《날씨의 아이》가 어땠는지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보며 감상평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스포일러를 가능한 한 적지 않으려 했지만 고찰을 하면 할수록 자연스레 하게 되네요…

본격 날씨 배달 알바 애니메이션


맑은 날씨를 배달해드립니다!

모리시마 호다카: 날씨는 참 신기해. 하늘의 상태가 이렇게나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다니!

어느 섬에 살고 있던 소년 호다카는 섬에 답답함을 느껴 도쿄에서 가출 생활을 시작합니다. 돈을 벌어야 하지만 신분을 밝히지 못해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못한 호다카는 넷카페(PC방)를 전전하거나 노숙 생활을 시작합니다. 끼니는 맥도날드에서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음료수를 사 마시며 해결합니다.

도저히 이래선 안 되겠다 싶은 호다카는 도쿄로 가는 배를 타다가 바다로 빠질 뻔한 자신을 구해준 남자 스가에게 연락합니다. 스가는 호다카를 인턴으로 채용하여 오컬트 관련 잡지에 글을 쓰는 업무를 맡깁니다. 호다카가 처음 맡은 업무는 기이한 날씨 현상에 대한 오컬트를 조사하여 기사로 작성하는 일입니다.

어느 날 호다카는 길을 가다가 불량배들이 유흥업소에 강제로 데려가려는 소녀 히나를 만납니다.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히나가 매일 굶다시피 한 호다카에게 빅맥을 건네준 적이 있었기에 호다카는 히나를 구한 뒤 어느 건물로 도망칩니다. 그 후 서로 오해가 생겨 잠깐 티격태격했으나 히나가 자기소개를 한 후 호다카를 건물 옥상에 있는 신사로 데려갑니다. 히나가 손을 모아 기도하자 비가 오던 하늘이 맑아지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능력에 놀란 호다카는 히나에게 그녀의 능력을 이용해 돈을 받고 날씨를 맑게 해 주자고 제안합니다. 제안을 받아들인 히나는 의뢰인의 부탁을 받아 날씨를 맑게 해 주기 시작합니다. 호다카와 히나의 동생 나기는 테루테루보즈(새하얀 천 위에 동그란 것을 올려 감싼 뒤 실로 묶어 창에 매다는 인형)를 사용하여 그녀의 기도를 돕습니다. 흐림 소년은 맑음 소녀를 만나 맑게 개었을까요? 그리고 그들은 계속 함께할 수 있을까요?

다 좋지만 스토리만 살짝 아쉽


호다카: 아무도 날 막을 수 없으셈!

후미(노부인): 도쿄 근처는 원래 바다였어. 인간과 날씨가 조금씩 바꿔온 것일 뿐. 난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생각해.

《날씨의 아이》는 제가 올해(2019년)에 본 애니메이션 중 단연 최고의 애니메이션입니다. 전작들과 같은 뛰어난 영상미, 훌륭한 OST 등으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번에도 달달하게 치유받고자 하는 저의 보상심리(?)를 잘 해결해주었습니다.

아무 장면이나 배경화면으로 써도 될만큼 작화가 훌륭했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기존 애니메이션처럼 이번 《날씨의 아이》의 작화도 단연 최고입니다. 특히 이번엔 훌륭한 영상미와 더불어 물방울이 이동하는 모습을 섬세하고 역동적으로 잘 표현해냈습니다.

작중에 중간중간 들려오는 보컬곡인 <축제><바람의 목소리>도 듣기에 너무 좋았습니다. 특히 <그랜드 이스케이프>가 들려오는 장면은 《날씨의 아이》에서 가장 극적인 명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곡 제목이 왜 그랜드 이스케이프(Grand Escape)인지 감동에 벅찬 채로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곡 하나 때문에 《날씨의 아이》를 IMAX로 여러 번 관람하기도 했습니다.

엔딩 크레딧 장면에서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있을까>가 재생된 후 수많은 관객들이 박수를 치던 시사회장의 모습도 인상 깊었습니다. 추가로 비 오는 날의 분위기에 맞게 쇼팽의 클래식 전주곡과 야상곡을 깔아 둔 잔잔함도 좋았습니다.

여담으로 OST 곡 중 하나인 <맑아지는 하늘>은 <그랜드 이스케이프>와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있을까>를 피아노로 합쳐놓은 곡인데 실제 피아노로 연주하기도 쉽고 다른 곡들에 비해 악상 표현도 쉬워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분들이라면 한번 연주해볼 것을 추천드립니다.

결말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긴 것도 많은 의견을 공유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주인공이 재회하는 엔딩 자체는 분명 해피엔딩입니다. 그러나 작중 당시의 배경을 살펴보면 마냥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도쿄의 많은 지역이 물에 잠겼기 때문에 배경만 놓고 보면 해피엔딩이라고 보기에 무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도쿄 근처는 원래 바다였으니 원래대로 돌아간 것일 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또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시나리오는 발단 – 전개 – 위기 – 절정 – 결말로 이어지는 구성에 맞춰 잘 짜여있습니다. 《날씨의 아이》를 보신 분들이라면 이 구성에 맞춰 줄거리를 쉽게 요약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개그 요소도 전작들보다 많이 가미되었고 세상이 어떻게 되든 상관 않고 히나를 위해 몸을 던진 호다카의 이야기도 감동적입니다.

그런데 호다카에게 꽤나 짜맞춰진 듯한 이야기와 깊이가 부족하여 단순하게 선형적으로 흘러가는 느낌이 드는 스토리가 조금 아쉽습니다. 이야기의 절정 부분 중 호다카가 경찰서를 탈출하는 장면부터 그와 함께 했던 모든 등장 인물들이 그를 위해 타이밍에 맞게 등장하는 장면이 좀 인위적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혜성의 파편이 추락하거나 두 주인공이 서로 다른 시공간에 살며 무스비(맺음, 매듭, 연결 등)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 등의 심오한 내용과 반전 요소가 여럿 등장한 《너의 이름은.》과 달리 《날씨의 아이》에서는 이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날씨의 아이》에서 반전 요소를 하나를 꼽자면 히나의 나이 정도가 있겠습니다.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해피 에디션


소설책 《호밀밭의 파수꾼》을 덮개로 썼을 때 가장 큰 참맛을 느낄 수 있다는 컵라면.


제가 직접 해 먹어 보겠습니다! 으와핡캵핡할카앜랄앍카랔칽핡캌 으흫 헿 매워!!

홀든 콜필드: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호다카, 히나 그리고 나기

모리시마 호다카: 만약 신이 계신다면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게 가진 것에서 무엇도 더 주지 말고 더 가져가지 말아 주세요. 우리들을 계속 이대로 함께 있게 해 주세요.

모리시마 호다카: 나는 그저 한 번 더 그 사람을 만나고 싶은 거라고!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은 《날씨의 아이》 예고편에 등장하여 호기심에 읽어본 책입니다. 전자책으로만 책을 보는 편이지만 전자책으로 출시되지 않은 책이라 부득이하게 중고 서점에서 구해 읽기 시작했습니다. 읽고 나니 형용하기 힘든 답답함이 몰려옵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과 《날씨의 아이》의 주인공 호다카는 개인적인 계기로 인해 방황하기 시작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는 점도 단순합니다. 홀든은 사람들이 본심을 드러내길 원하고 호다카는 히나와 나기와 계속 함께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홀든의 사람들은 대부분 가식적이고 허세로 가득 차 있으며 히나에게 얽힌 운명의 데스티니(?)는 호다카의 소망을 허락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 작품은 그 방황을 어떻게 끝냈는지에 차이점이 있습니다. 홀든은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인 홀든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낙제점을 받은 후 뉴욕을 방황하기 시작합니다.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나 처음 본 사람들과도 만나지만 끄끝내 의지할 상대를 찾지 못합니다. 그나마 자신을 이해해주고 진심 어린 조언까지 해주는 선생님이 있었지만 선생님의 행동을 오해한 홀든은 그 선생님마저 떠나버립니다. 결국 그가 그나마 의지한 인물은 어린 여동생인 피비뿐입니다. 반면 《날씨의 아이》의 호다카는 도쿄로 온 후 의지할 사람들을 찾게 됩니다.

홀든의 상황이 시궁창이라 《날씨의 아이》를 먼저 보고 나서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다면 읽다가 체했을(?) 것 같습니다. 둘 다 본다면 《호밀밭과 파수꾼》을 먼저 읽은 후 《날씨의 아이》로 속을 달래는 게 적절할 듯싶습니다. 《날씨의 아이》는 마치 《호밀밭과 파수꾼》을 행복하게 각색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세상은 나쁘고 착하게 미쳐 있다.


조커가 두 명으로 보인다면 정상입니다(?)

아서 플렉: 난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개 같은 코미디였어.

스가 케이스케: 원래 세상은 미쳐 있었어. 그러니까 세상이 이렇게 된 건 네 탓이 아니야.

《날씨의 아이》를 보면서 "원래 이 세상은 미쳐 있다.”는 대사가 나오자 문득 최근에 본 영화 《조커》가 생각났습니다. 이 영화에서도 세상은 미쳤다는 인식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두 작품에서 정의하는 미쳤다는 뉘앙스는 서로 다릅니다.

먼저《조커》의 주인공인 아서 플렉은 나름대로 세상에 적응하고자 노력하지만 그런 본인에게 세상 사람들은 모욕을 주며 몹쓸 짓을 합니다. 이를 견디지 못한 아서 플렉은 결국 조커로 각성하게 됩니다. 나쁘게 미쳐버린 아서 플렉의 세상이 그를 조커로 만든 셈이지요.

반면 《날씨의 아이》의 주인공인 호다카의 세상은 착하게 미쳐있습니다. 쥐뿔도 없던 호다카에게 히나가 빅맥을 건네지 않았다면, 히나를 만나러 가는 걸 방해했던 스가가 돌연 호다카를 돕지 않았더라면, 나기가 몸을 던져가며 호다카를 돕지 않았더라면 호다카는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았다면 호다카는 제2의 홀든 콜필드, 제2의 아서 플렉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총평

신카이 마코토 감독: (용산 아이맥스 무대인사에서 이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전 세계적으로 지구가 어떤 의미에서는 미쳐버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사회와 이세계를 살아가면서 항상 누군가가 무언가 때문에 희생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가장 소중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장 지키고 싶은 소중한 사람은 너야!" 라고 외치고 싶은 주인공들을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스토리가 조금 아쉽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 전체주의 비판 및 그러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를 잘 풀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의 깊이나 반전을 중요하게 보시는 분들이라면 《너의 이름은.》을, 비교적 개그적인 요소를 많이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날씨의 아이》를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저는 전자를 택하겠습니다. 즉 《날씨의 아이》는 《너의 이름은.》에 아주 살짝 근소하게 졌지만 잘 싸웠다 정도의 느낌(?) 졌잘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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