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알못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독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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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로서, 나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명료함을 추구하고,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는 있다. 그 결과 아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우리 종의 미래에 관한 토론에 참여할 힘을 얻는다면 내 소임은 다한 것이다. – 서문

현대 자유주의 세계관과 민주주의 체제는 인류가 채택한 최선의 제도이지만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자유주의는 경제 성장을 통해 갈등을 해결했지만 생태계를 붕괴시키고 있고 민주주의 체제는 신기술에 유동적이지 못하고 대처가 늦습니다. 또한 권위주의 정권의 등장, 언론의 편협화 및 가짜 뉴스의 창궐은 국민을 몽매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책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들춰내며 이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고찰하는 책입니다. 유발 하라리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환멸을 갖고 벗어나려 한다 한들 대체제가 없기에 결국 회기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유발 하라리가 이 책을 쓴 목적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함으로써 좀 더 나은 미래를 구상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머나먼 미래에 어떤 신념과 체계가 등장할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지금으로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운명의 데스티니(?) 속에서 좋든 싫든 살아가야 합니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이런 운명 속에서 미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은 요인들을 독자들이 스스로 생각해보도록 합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현대사회의 위기요소와 유발 하라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종합하여 고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보는 범람하지만 검증은…?

우리 주변엔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흥미진진한 뉴스가 가득합니다. 일부 인터넷 뉴스는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 제목을 자극적으로 꾸미며 전후 사정을 따지지 않은 채 틀린 사실을 보도하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독자는 스스로 상품이 되어 질 나쁜 정보를 얻게 됩니다. 일부 편향된 언론사는 낚싯대에 자극적인 기사를 매달아 월척을 낚고 있습니다.

이렇게 옳고 그름, 품질이 판별되지 않은 무분별한 정보들이 우리 사회에 범람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이런 정보들을 짜깁기한 가짜 뉴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런 가짜 뉴스들은 독자들의 판단력을 흐리는데 일조하고 있으며 이를 반박하려 할 때 이미 새로운 가짜 뉴스가 만들어지곤 합니다. 가짜 뉴스가 반복되면 결국 진실이라고 믿게 될 수 있지요.

정보는 이미 우리 사회에 차고 넘칩니다. 이제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자 노력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자신이 습득한 정보를 식별하고 이해하며 정보의 단편들을 조합하는 능력을 갖도록 배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보의 참거짓을 가리고 이해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테러리즘: 절멸의 전도자

과거 전쟁은 전리품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으나 현대 사회에서 그런 건 푼돈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현대 사회에서는 평화 속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훨씬 더 이득입니다.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살려주듯 말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전쟁이 일어날 확률과 횟수는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소수를 희생하여 모든 것을 얻을 수도 있는 도박을 시행하는 테러리즘의 공포는 언제든 전쟁을 일으킬 명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상호확증파괴를 통해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않을지 모르지만 핵 테러로 인해 한 순간에 아슬아슬했던 위기가 최악으로 치달을지도 모릅니다.

인류의 의제는 무척이나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자원 고갈에 대비하고자 인류가 우주로 진출하기 위한 의제를 1순위로 뽑고 싶습니다. 그러나 전쟁과 테러 대비에 막대한 기회비용이 손실된다면 날린다면 전 지구적 문제에 비용이 투입되지 못할 것입니다. 자원이 고갈된 지구에서 인류는 절멸을 맞이할지도 모릅니다. 전쟁과 핵 테러도 분명 예방해야 하지만 이것들이 항상 인류 의제의 1순위가 될 수는 없습니다. 히스테리(병적인 흥분 상태)를 낮추고 과잉 대응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위기의 종교

인류는 추상적인 것들을 상상할 수 있고 그것들의 의미를 엮을 수 있는 능력을 통해 종교를 탄생시켰습니다. 이렇게 허구적인 것을 통해 종교는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이끌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석과 변명에 능한 종교는 잘못을 인정하고 다른 방법을 강구하는 과학에 권위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과학은 기술적인 질문엔 명확하게 답하고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등의 윤리적이거나 정책적인 판단은 과학이 하기 힘듭니다.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리라 믿고 과학에 모든 것을 맡겨버리는 생각은 과학이 폭주했을 때 그것을 견제할 수단이 없어진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합니다. 앞으로 종교는 인류가 어떻게 해야 할지, 신기술은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지 제시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과연 새로운 정치제도가 등장할까…?

유발 하라리의 저서 《호모 데우스》와 이 책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작가의 흥미로운 언급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데이터 처리량과 정치 제도의 변화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 작가의 생각입니다. 과거엔 데이터 처리량이 많지 않았기에 중앙 집중형 정치제도(군주제)로도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이 소련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한 이유는 막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기에 효율적인 분산형 정치 제도를 채택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현재 분산형 데이터 처리에 적합한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AI)이 발달함에 따라 방대한 데이터를 중앙 집중형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될 길이 열렸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언급에 따르면 인류는 다시 중앙 집중형 정치제도로 회귀하는 걸까요? 그렇게 된다면 소수의 엘리트가 권력을 독점한 권위주의 정부가 인공지능으로 국민들을 감시하는 사회가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따라서 인공지능(AI)을 목적에 맞게 활용하되 분산형 데이터 처리 방식을 중앙 집중형 데이터 처리방식보다 효율화하고 중앙 집중형 데이터 처리방식의 부작용을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물음에 작가는 모른다고 답합니다. 인공지능의 사용 권한을 분산시키면 폐단이 덜 생기게 될까요? 음…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판단의 위기

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는 유능한 정치인을 선출하는 수단이 아니라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을 어떻게 느끼는지를 묻는 감정 투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류는 진실이라는 의제를 우선순위로 둔 적이 흔치 않으며 진실보다 힘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선거란 진실과는 상관없이 자기 자신의 마음이 그렇게 하라는 대로 선택하는 자유 행동입니다. 그래서 투표는 현재로썬 지도자를 뽑는 최선의 수단이나 그 이면엔 아킬레스건이 숨겨져 있습니다.

인류는 정확한 판단을 위해 알고리즘(일련의 처리 과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정교하고 정확하게 설계된 알고리즘은 인간의 감정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할 것입니다. 게다가 생화학적 알고리즘이 규명된다면 인류는 행복한 감정만을 취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선거는 더 이상 감정 투표가 아니게 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알고리즘이 만능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알고리즘은 결국 설계된 결과를 따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지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급상황에 누구를 살릴 것인지, 선한 판단을 할 수 있음에도 악의적인 판단을 할지 등은 결국 알고리즘을 설계한 프로그래머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아무리 만능에 가까운 알고리즘, 로봇, 인공지능(AI)이 있어도 그것을 소유한 인간이 어리석은 판단을 내린다면 그것들이 없느니만 못할 것입니다.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인류는 언제든 겸허한 태도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뛰어난 알고리즘을 가지고 이런 판단을 내려선 안 됩니다. (......)

마치며…

다른 책들보다 독서평을 길게 쓴 것 같습니다. 사실 더 쓰고 싶지만 너무 장황해지는 느낌이 들어 멈춰야 할 것 같습니다. 이처럼 미래에 대한 고찰을 길게 나열토록 해주는 책인 것 같습니다. 미래에 흥미가 있다면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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