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알못 《3월의 라이온》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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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브런치에 기고한 글입니다.

March comes in like a lion and goes out like a lamb.
3월은 사자처럼 찾아와 양처럼 지나간다.

March comes in like a lion and goes out like a lamb. 라는 영어 속담이 있습니다. 3월은 사자처럼 험상궂은 날씨로 시작해서, 양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날씨로 끝남을 뜻하는데요. 이 속담처럼 혼자서 차가운 고독을 품어가며 살다가 사람들을 만나면서 점점 따스하게 변화해가는 애니메이션이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3월의 라이온》은 줄곧 혼자였던 프로 장기 기사 키리야마 레이가 장기와 주변 사람들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만화 원작의 애니메이션입니다. 일본 장기인 쇼기를 바탕으로 하는, 소재로만 봤을 땐 매니악한 작품이지만 주로 인물들의 내면 심리를 파고드는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후자 쪽에 집중하며 보았습니다.

생계형 프로장기러


본의 아니게 뻐꾸기가 돼버린 주인공의 가슴 시린 이야기 8ㅅ8

카와모토 히나타: 언니는 뭐든 주워와. 깡마를 얘들을 보면 내버려 두질 못해. 그래서 포동포동하게 만드는 걸 좋아해. 하지만 사람을 주워왔을 땐 깜짝 놀랐어.

키리야마 레이(주인공): 나…?

사교성이 부족한 주인공 키리야마 레이는 학교 생활이 괴로웠지만 방과 후 혼자서 안식을 취할 수 있는 집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게 되어 하루아침에 고아가 됩니다. 부모님의 장례식장을 방문한 이들 중 레이를 돌봐주려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에 레이는 앞으로 자신만의 공간이 없어질 거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때 레이와 장기를 두곤 했던 아버지의 친구 코다 8단이 그의 앞에 운명처럼 나타납니다. 그러고는 레이에게 묻습니다. “장기가 좋으냐?” 이런 상황에 레이는 장기가 좋고 싫음의 여부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을 것입니다. 단지 자신만을 위한 공간을 잃지 않기 위해 레이는 코다 가(家)에 들어가 살게 됩니다.

레이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장기에 전념합니다. 하지만 장기에 빠져들수록 본의 아니게 갈등이 생겨납니다. 레이를 이기지 못한 코다 가(家)의 아이들이 비뚤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레이는 점점 뻐꾸기 같은 존재가 되어 갑니다. 결국 레이는 코다 가의 아이들을 둥지 밖으로 내모는 뻐꾸기가 되기 전에 집을 나와 힘겨운 자취를 시작합니다. 분명 본인이 잘못한 게 아님에도 발생하는 대인적 갈등. 가족을 잃은 슬픔과 아이러니한 상황이 겹치면서 레이는 점점 깊은 고독과 외로움을 품어갑니다.

함께라면 할 수 있어요!


애니메이션 2기 마지막화 마지막 장면

레이의 담임선생: 혼자서는 어쩔 수 없는 일도 누군가와 함께 힘내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꽤 있어. 그렇게 힘을 빌렸다가 다음에 상대가 곤란할 때 네가 힘을 빌려주면 돼.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단다. 키리야마. 혼자서 어떻게 못 하겠으면 누군가에게 기대라. 안 그러면 결국 누구도 네게 기댈 수 없어!

이런 상황에 레이는 카와모토 가(家) 세 자매를 만난 후 구원받기 시작합니다. 서로 처지가 비슷한 레이와 카와모토 가 세 자매는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치유합니다. 레이는 이런 장소가 생긴 것만으로도 마음의 안식을 얻지만 한편으론 방문하는 것이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닌지 걱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음을 깨달으며 점점 카와모토 가로 발걸음을 옮겨 나갑니다.

그렇게 점점 모든 걸 혼자서 하는 게 익숙했던 레이에게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으며 변화가 찾아옵니다. 담임 선생님에 의해 모든 걸 혼자서 해결할 수 없음을, 시마다 8단과의 대국에서 자신의 미숙함과 오판에 대해 깨닫습니다. 이렇게 레이는 동아리와 장기 연구회에 들어가며 혼자만의 세계에서 점점 탈피해갑니다.

혼자서 모든 걸 껴안으려 했던 주인공이 사람들을 만나가며 변화하는 이 애니메이션의 이야기애 정감이 갑니다. 보다가 먹먹하다가도 어느 순간 행복해집니다. 개인적으로 남들과 어울리는 걸 불편해하다 보니 주인공의 심정과 행동이 보다 크게 와 닿는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사정은 있다.


현실에도 이런 선생님이 있을지...

학생주임: 확실히 (따돌림에 대한) 증거는 없죠. 그보다 증거가 있을 리 없잖아요? 저지른 사람은 절대 인정 안 하고 주변 사람도 일렸다간 자기가 당하니까 입을 다물죠. 따돌림 사건에선 증거 같은 게 나올 리 없어요. 증거가 없는 게 당연한 겁니다. 괴롭힘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피해를 본 사람뿐입니다. 그러니 괴롭힘이 있었다고 말한 게 이미 하나의 증거가 되는 거죠.

학생주임: (가르칠 ‘교’에 기를 ‘육’. 기를 ‘육’만 없었어도 예전에 내팽개쳤어. 이런 거.)

애니메이션 《3월의 라이온》은 주인공의 성장 드라마를 보여줌과 동시에 장기 기사들의 내면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합니다. 장기에 입문한 계기, 장기를 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대국에서 이겨야만 하는 이유와 관련된 심리 묘사를 통해 주인공뿐만 아니라 장기 기사들 모두가 살아가면서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잘 풀어냈습니다.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보다 만화책으로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덜 지루하게 읽어낸 것 같습니다.

특히 애니메이션 2기 파트에서 학생주임 선생님이 따돌림에 대처하는 장면이 인상 깊습니다. 따돌림 가해 학생의 부모를 입 다물게 만든 선생님의 언행도 그렇고,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와 이야기하며 사정을 들어보려 하는 선생님의 태도와 고뇌를 보며 많은 것들을 생각게 합니다. 단순히 가해자만이 사과하면 끝날 일인가, 연대 책임은 없는 것인가, 뚜렷한 해결책은 정녕 없는 것인가 등등…

총평


자강두천(?)

장기화학부장: 실망과 쓸쓸함도 인간에게 필요한 감정이죠. 용기를 내서 새로운 세상에 손을 뻗는 건 쓸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람은 자신의 작은 세상을 갓난아기처럼 손을 뻗어 넓혀 가는 것 아닐까요?

살짝 지루함을 느낄 수 있으나 인물들의 심리에 집중하며 본다면 따뜻함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주인공이 저와 닮은 점이 많아(?) 개인적으로 훨씬 정감이 가는 애니메이션이기도 합니다.

가볍게 눈여겨볼 점이 있다면 오프닝과 엔딩의 이미지가 다소 대비된다는 것입니다. 3월은 서로 대비되는 날씨로 시작하고 끝남을 뜻하는 속담에서 따온 ‘3월의 라이온’이라는 제목에 딱 부합하는 설정입니다.

여담으로 레이와 친밀한 인물들은 솔로지만 레이와 갈등을 겪는 인물들은 연인이거나 기혼자입니다. 우연일까요 아니면 작가의 의도적인 설정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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