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와 골목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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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브런치에 기고한 글입니다.

죽기 전에 쇼팽의 발라드 1번을 꼭 연주해보리라 마음먹으며 시작한 악기가 있습니다. 곡명에서 알 수 있듯 그것은 바로 피아노입니다. 피아노를 취미로 즐기는 입장에서 이 곡을 기교 있게 연주할 수는 없겠지만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조금씩 연습하며 퇴직(?) 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연주해볼 생각입니다.

영화 《피아니스트》의 주인공 슈필만이 독일군 장교 앞에서 살기 위해 비참한 몰골로 연주했던, 애니메이션 《4월은 너의 거짓말》의 주인공 코세이가 이성친구를 생각하며 혹시나 하는 희망을 잘 녹여낸 이 곡은 슬픔-희망-슬픔의 패턴을 보여주며 저로 하여금 반드시 직접 연주하고 싶게 만든 매력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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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쇼팽 발라드 1번을 연주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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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4월은 너의 거짓말》에서 쇼팽 발라드 1번을 연주하는 장면

뜬금없이 피아노와 골목식당이 무슨 연관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SBS 방송 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애청자로서 골목식당을 보다가 문득 피아노를 잘못 연습하고 있다는 걸 느껴 글로 적어보려 합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죽어가는 골목식당을 살리고자 백종원 대표가 식당의 문제점을 살펴본 후 솔루션을 제시하는 SBS 방송 프로그램입니다. 이 방송을 통해 백종원 대표의 조언을 새겨들으며 크게 발전하는 식당이 있는가 하면 아집에 사로잡혀 솔루션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해하기 힘든 식당도 있습니다. 후자의 빌런(?) 식당들을 볼 때마다 저는 ‘저러니 손님이 없지!’ 라며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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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방송은 거의 안 보지만... 골목식당만큼은 본방 사수하며 보고 있습니다.

피아노도 마찬가지입니다. 골목식당의 솔루션이 피아노에선 레슨인 셈입니다. 매주 학원에서 레슨을 받은 뒤 연주법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앞으로 연습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지도받습니다. 레슨을 받으며 지적받은 사항들을 조금씩 고쳐나간다면 피아노 연주 실력이 늘어나지만 그렇지 않으면 제자리걸음만 할 뿐입니다.

저는 피아노를 점점 빠르게 연주하고,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으며 연주하는 편입니다. 이는 레슨을 받을 때 자주 지적받는 사항인데요. 심지어 숨을 쉬지 않고(?) 연주한다는 지적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칙칙한 갈색 모래사막 위에서 삭막하게 연주하고 있는 모습이 오버랩되곤 합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메트로놈을 켜고 마음속으로 노래하듯 연습하라는 지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를 제대로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메트로놈을 켜고 연습하다가 자꾸 박자가 어긋나는 게 너무 짜증 나서 메트로놈을 꺼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였으며, 속으로 악상을 생각하며 연주하다가도 어느 순간부턴 무의식적이며 기계적으로 연주하기 마련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쇼팽의 환상즉흥곡은 폴리리듬(2개 이상의 대조되는 리듬을 하나로 합친 리듬)으로 구성되어 있어 느리게 연주하면 왼손이 뒤뚱거리듯이 연주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점점 빠르게 연주하게 돼버립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 레슨을 받다가 부끄러움을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연주가 빠르다, 숨을 쉬지 않고 너무 급급하게 연주한다, 몇 주 전부터 고쳐야 할 점을 알려줬으나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등의 지적을 들은 순간 백종원 대표의 조언을 따르지 않은 식당들을 비웃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본인의 지적사항을 고치려 하지 않은 채 도리어 남의 그러한 모습을 흉보다니… 나의 단점을 고치기 힘들어하면서 남에겐 내로남불의 모습을 보였던 제가 한없이 부끄러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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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4월은 너의 거짓말》의 주인공 코세이는 연주 도중 본인의 연주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호소하는데... 이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만도 같습니다...


이젠 대충 연습하는 1시간보다 제대로 연습하는 10분이 더 효과가 있음을 생각하며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항상 메트로놈을 켜놓고 박자에 맞출 수 있도록 연습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쇼팽 발라드 1번을 3분의 1 가량 느릿느릿 연주할 수 있지만 언젠가 반드시 끝까지 연주할 수 있게 되길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추후에 피아노 연습이 나태해질 때 이 글을 다시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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