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알못 《미드나잇 가스펠》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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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브런치에 기고한 글입니다.

미드나잇 가스펠

(주의!) 이 감상평에는 애니메이션 《미드나잇 가스펠》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게 44살...?
이게 44살…?

우리는 살아가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종종 생각하곤 합니다. 쓰디쓴 술을 도대체 왜 입에 대는지에 대한 의문부터 사후의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에 대한 걱정까지, 우리는 전자처럼 시답잖게 웃어넘길만한 의문이 있는 반면 후자처럼 아무리 고민해도 정답이 나오지 않을 법한 고민을 달곤 하지요.

애니메이션 《미드나잇 가스펠》은 주인공인 클랜시가 가상 세계의 인물들과 인터뷰를 주고받는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입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귀요미(?) 애니메이션 《핀과 제이크의 어드벤처 타임》을 제작한 팬들턴 워드가 덩컨 트러슬의 팟캐스트를 구성하여 공동 제작되었는데요. 일반적인 애니메이션과는 다르게 이야기 하나하나가 매우 철학적이어서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삶과 죽음에 대한 교훈이 너무나 크게 와 닿는 애니메이션입니다.

난해함 속에 담긴 교훈


(주인공 혹은 덩컨 트러슬의) 어머니: 죽음 너머에 뭐가 있는진 몰라. 하지만 내 안에서 자란 살아 숨 쉬는 많은 것들과 육체적인 죽음을 향한 움직임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 것 같아.

이 애니메이션은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두세 번을 보아도, 자막만 보는 데 분명 집중했음에도 등장인물들이 무슨 의도로 얘기를 하는 건지 머릿속에 정확히 정리되지 않습니다. 8개의 에피소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각각의 주제를 철학적으로 설명하다 보니 이해하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본 애니메이션 중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작품의 세계관 해설에 인색한 《건담 G의 레콘기스타》였는데요. 《미드나잇 가스펠》의 철학적이고도 심오한 캐릭터 대사를 하나하나 이해하는 게 더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이해하고 나면 얻을 수 있는 교훈, 특히 죽음에 관한 교훈이 많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죽음에 대해 궁금해합니다. 그러나 죽은 자는 죽은 경험을 타인에게 공유해줄 수 없기에 아무도 사후세계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런 궁금증이 심해지면 죽음 공포증에 시달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미드나잇 가스펠》에서는 죽음에 대해 소탈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좀비에게 물려 좀비가 되거나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좀비가 되어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만약 감옥 같은 인생에서 해방되는 열쇠가 좀비에게 물려 자아를 잃는 것이라면…? 죽음이란 자아가 없어짐을 뜻하지만 동시에 고통의 원천인 자아가 없어짐으로써 목숨이 다 하기 직전에 느낄 수 있는 오르가슴이 아닐까…? 죽음이 현실의 고통을 해방시켜주는 수단으로써 비약될 수 있어 매우 조심스럽지만… 죽음과 이에 대한 두려움을 이런 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미드나잇 가스펠》의 주제를 36분 간 엮어낸 집약체입니다. 주요 내용은 아기가 된 주인공이 어머니와 함께 늙어가며 인터뷰를 이어나가는 것인데요. 몸에서 순대(?) 아니 내장이 튀어나오거나 끔살을 당하는 캐릭터를 봐도 무덤덤한 태도를 보이던 주인공이 유난히 이 에피소드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자주 나타납니다. 알고 보니 그 이유는 어머니가 덩컨 트러슬의 고인이 되신 어머니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실제 성우도 그의 어머니입니다.)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된 후 덩컨 트러슬을 주인공에 투영하며 다시 보니 시한부 인생을 살며 죽음에 대해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말 한마디 한 마디를 비망록에 적어 놓고 잊고 싶지 않을 정도입니다.

총평

자, 이제 인터뷰를 시작하지!
자, 이제 인터뷰를 시작하지!

(주인공 혹은 덩컨 트러슬의) 어머니: 마음의 문이 닫혀 있는 건 우리가 닫았기 때문이야. 고통을 느끼기 싫어서 방어하는 거지. 이런 생각은 그 문을 연단다.

이 애니메이션 대부분을 이해하려 한다기보다는 감명 깊은 대사들을 곱씹으며 ‘이건 이런 뜻일까?’, ‘나름대로 이런 시각으로 보는 게 맞을까?’ 등 나름의 해석을 덧붙이며 보는 게 괜찮을법한 애니메이션입니다. 일반적인 재미만을 추구한다면 절대 추천하지 않지만, 삶과 죽음에 대해 돌이켜보고 고찰해보고 싶으신 분들께 적극 추천드립니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이전보다 더 소탈하게 살아가게 된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도입부에서 제시했던 고민에 대해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술을 마시게 하는 상황만 있을 뿐. 그리고 죽음 너머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살아 숨 쉼을 느끼며 열심히 살 수밖에 없음을.

여담으로, 이 애니메이션 제목의 가스펠(Gospel)은 복음, 좋은 소식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제목이기도 하지만 덩컨 트러슬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것(애니메이션 제목)은 가장 어둡고 비극적인 순간에 우리가 일어나고 있는 일에 굴복하고 그 순간을 맞닥뜨리면, 언제나 사랑이 있음을 뜻합니다. 꼼짝 못 하게 된 우리 자신을 발견한 혼란스러운 현상을 초월하는 무언가가 항상 있습니다. 이것이 제 생각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나름대로의 해석이 있을 겁니다." (영알못이라 해석이 제대로 됐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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